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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의 지금 현실을 보건데 이런 영화를 만들어 개봉할 수 있는 독일인들의 자유가 부럽기도 하다.
처음 <더 웨이브> 아니 독일어로 <디 벨레>라는 제목을 봤을 때 무슨 영화인가 싶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났을 때 정말 엄청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인들은 파시즘을 상당히 경계한다.
지난 2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들이고, 그로 인해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으며, 전 유럽인들의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기피와 멸시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쟁이야 정부에서 일으키는 것이라지만, 원칙을 따지기 좋아하고 논리적이라는 것을 자부하는 그런 독일인들이 한 사람의 말에 현혹되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천만명의 목숨을 빼앗고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그들 스스로도 믿기지 않고, 그게 두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2차 대전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하며 또다른 파시즘 또다른 히틀러가 등장하게 되지 않을까 상당히 주의하며 경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디 벨레>는 그런 독일인들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프로젝트 주간에 '독재정치'라는 수업에서 독재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자 벵어 선생은 독재 정치의 기본 요소를 하나씩 언급하고 언급된 내용대로 하나씩 하나씩 진행해 나간다.
처음엔 대표인물을 정하고 다음엔 규율을 정하기 시작한다. 반대자는 수업에서 배제함으로써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고 배제됐던 자들 중에 돌이키는 자는 다시 받아주어 그들의 충성심과 집단 자체의 충섬심을 더욱 고취시킨다.
그리고 의복을 통일함으로써 집단의 공동체 의식을 높인다.
마지막으로 단체의 이름과 구호, 표식, 그리고 주제가를 정하는 것으로 독재의 모든 요소는 완성된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바로 추종자의 등장과 외부의 압력이 조미료가 된다.
외부의 압력이 발생하면 처음엔 느슨했던 공동체 의식이 더욱 고취되고 추종자들은 이를 단체의 결속력 강화를 위한 소재로 적극 활용한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던 독재정치 수업.
본인들 스스로 합리적이고 자유분방하다고 믿으며, 파시즘은 절대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언급조차 하기 싫어했던 학생들은 차츰 파시즘에 빠져들게 되고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파시즘의 무서움.
영화는 인간 심리의 이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본인들 스스로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가장 비합리적인 동물 인간.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자부하기에 그런 미개한 집단주의에 빠져들지 않을거라고 장담하던 그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감언이설에 전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자발적으로 파시즘에 빠져들었고 열렬히 추종했으며 수많은 죄없는 목숨들을 빼앗고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했던 것이다.
비단 독일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아니다. 전세계의 누구에게도 어느 민족에게도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100년전 일본인들도 그랬고, 일본에 의해 치욕적인 과거를 살다 해방되어 남북으로 분단되고 짧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뇌되어 동족상잔을 일으킨 우리 민족을 봐도 그렇다.
사실, 독재정치는 시작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부분만 지나면 추종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처음엔 대표자를 뽑고 간단한 규칙을 만든 다음, 규칙에 따라 반대 세력을 제거하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던 사람들 상당수가 추종자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추종자라는 말이 어색할 수도 있다.
그냥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어쨌거나 이런 사태가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언론 미디어를 통제하려는 정부.
국민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디어를 통제하게 되면 정부에 반대되는 세력들의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다 사라지게 될 것이고, 오로지 정부가 하는 말만 들을 수밖에 없게 되며 차츰 길들여지게 될 것이다.
아니라고 장담할까?
영화에서처럼 가장 큰 반대 세력이 축출되면 다수인 중립주의자들은 급격히 정부의 편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축출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야 편히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현실이 오지 않을까.
올지 안올지는 솔직히 모른다.
하지만, 만약 미디어법이 통과가 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그만큼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기를 바란다.
집단주의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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